나의 순종과 소명 따라가기(IV)-1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다음은 내가 그리스도를 순종해 나간 궤적의 한 부분이다: 

 1988년 10월의 어느 주일이었다. 나는 미구에 선교사가 되고 복음전파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미션의식을 갖고 살았다. 국내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믿음생활 하시기에 편리한 곳으로 교회를 정하기로 했다. 강남구 일원동 신주택지에 우리의 주거지로 정하고 ‘개포감리교회’에 등록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목회자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 교회에서 청년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이었다. 그의 말씀은 ‘가라’였다. 그날 성령께서 ‘가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신 말씀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브라함을 기억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아갔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였다.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 내일이었다. 하나님만을 믿고,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으니 나가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그에게 나타나시게 될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었다. ‘지시할’ 땅으로의 행차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앞으로 그에게 계속해서 나타나 지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여정과 목적지를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는 약속이 내포되어 있는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행차’는 대단한 믿음의 발로였다. 

  역시 그 같은 신뢰가 절실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황의 변동이 예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독일로 돌아갈 때 나에게는 동역할 수 있는 교회 하나가 ‘내정되어’ 있었다. 공부를 끝내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부터 앞으로 3년 후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면 모두가 그 교회와 동역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내가 은혜를 받은 그 수양회를 개최한 교회였다. “독일로 다시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부터 나는 그 ‘프랑크푸르트 교회’와 전보다 더욱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교회는 당시에 상당한 영적 파워를 과시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선교에 대한 비전과 특히 독일의 한인 1.5세와 2세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중에 돌아오면 그 교회와 동역하라고 하신 것 같은 ‘감동’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 교회가 1년에 두 차례 개최하는 수양회는 빠지지 않았고 그 교회의 집회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참석했다. 나는 본과 쾰른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매주일 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드리면서 ‘스승과 제자’같은 친교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교회의 일이나 행사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있었다. ‘복음전도단’을 만들어 그 교회 목사님과 함께 독일의 외국인 2세들과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복음선교’를 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목사님이 1988년 가을에 일시 귀국하셨다. 그때에 우리는 한국 체류를 1년여 남겨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선교사로 나갈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분을 서울에서 만나고 난 다음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에게 나의 준비상황을 보고 드렸다. 

 런데 그의 반응은 전혀 ‘딴 판’이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뭣 때문에 오려고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문제를 발견했다. 나는 그가 나의 여전한 각오와 준비상황을 들으면 크게 기뻐하고 대견스러워 할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색을 하면서 내가 새삼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내가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혹자는 그가 나를 넌지시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를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노골적인 사절이었다. 그의 ‘메세지’는 분명히 환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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