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창조반 제11강 소감

아담이 감당하지 못한 남편으로서의 책임

창세기소감문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4-6)

담의 갈비뼈 하나를 재료삼아 이브를 만드시고 그에게 걸맞는 돕는 배필로 주셔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녀를 보호하고 양육하여 영광의 그릇으로 삼기를 의도하신 섭리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강의에 이어 에덴은 여전히 예상치 못했던 영적 전투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간교한 뱀은 이브가 자기의 시비에 대답을 하면서 걸려들자 즉시로 대범하게 마수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분명히 못 박아 놓았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여기서 권위의 대립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선포하셨고 뱀으로 등장한 사단은 "결코...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여기서 두 권위 사이에 처한 이브의 태도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브가 뱀에게 대답하는 어투 속에는 그녀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사랑으로 말미암는 즐거움도 가지지 못한 자녀로 보입니다. 사랑은 자발적인 순종을 가져옵니다. 두려움에 근거한 순종도 있습니다. 두려움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라도 말씀을 지키려는 시도를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발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의무적인 순종이라도 보여야 하는 법입니다.


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그녀의 관계성이 미온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와 정확하지 못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인용한 말씀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과는 결과 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뱀이 이브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유혹할 수 있는 배경은 그녀가 미혹을 당할 만큼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는 아담의 치명적인 책임유기를 추론합니다. 이브가 이런 미온적인 관계성과 모호한 말씀에 대한 태도를 가지게 된 배후에는 아담이 자신의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브는 남편인 아담으로부터 생명을 전수받은 그의 아내입니다. 이브의 생명은 아담에게 연유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자신의 생명을 이브에게 분여해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브는 아담의 권속이자 '자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아담은 아담-이브가족의 보호자요 그 가정의 제사장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담이 이브를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아담에게는 아담가문을 창시하는 원조로서 아버지의 역할과 남편역할이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이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아담은 아버지 역할을 하는 가장으로서 이브에게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동시에 남편으로서 자기 아내를 사랑하여 그 사랑에 의해 남편을 따르도록 하는 일에도 실패하였습니다. 이 가정의 문제의 핵심은 이브가 아니었습니다. 보다 심각한 죄의 문제는 아담에게 있었습니다. 이브는 미혹을 받아 죄의 촉매자 역할을 했지만 아담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었습니다. 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아담에게 있었습니다. 아담이 가정을 리드하고 아내를 지도하여야 했습니다. 오히려 아내를 리드하지 않고 리드당하는 실책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가장은 머리로서 리드하고 아내와 자녀들을 가르치고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브가 유혹에 넘어갔을 때 표면상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과실을 땄을 때나 먹었을 때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실과를 아담에게 곧 그녀의 남편이자 '아버지'격인 가정의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당신도 먹어봐' 했을 때 아담이 그것을 받아먹었다는 사실에서 죄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3.7)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죄는 아담가문의 시조인 아담에게서 유래되고 있습니다. 여자에 의해서 죄가 유전 되지 않습니다. 남자의 씨가 죄를 대물림하는 것입니다. 이브는 미혹을 받았고 아담이 불순종을 선택하여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담이 그의 '참 아버지'를 거부하고 그의 말씀을 버림으로 거역의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죄의 유전인자가 저주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향하여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언명하셨습니다. 아담이 그 말씀을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자기 아내가 뱀의 말에 미혹을 받아 과실을 따먹었다고 해도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의 아내의 머리된 아담의 몫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가정의 책임을 아담에게서 찾으십니다. 왜냐하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를 철저하게 보양해서 미혹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가장과 남편역할을 잘해야 했습니다. 아담 자신은 아내의 어리석은 제의를 거부했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미혹을 당해서 실과를 먹었다 해도 아담이 대신 회개하고 자기아내를 타이르고 회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담가정의 불행과 인간의 저주는 모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책임은 아담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다스리는 자요 리더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일견 아내의 문제는 남편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기 이전에 가정의 아버지격인 가장이 아내나 자녀들을 위해 보호막이 되고 훈육자 역할을 맡아줘야 합니다. 아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정의 제사장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부족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담의 실패를 보면서 나의 실패한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못내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정의 제사장역할을 잘못했다는 처절한 후회가 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과거를 돌이킬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를 되짚으며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쉬움의 내력이 파악되고 진단되어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핸들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가 비슷하겠지만 나 역시 나의 원가정과 자라온 배경이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나의 의지대로 살아온 회심이전의 삶도 열매를 따는 측면에서 많은 부실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나는 27세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습니다. 29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기도 전에, 그리고 성경적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해를 가지기 전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죄된 삶에 대한 회개는 있었지만 죄가 가져온 열매에 대한 처리나 치유가 없는 결혼생활이 문제였습니다. 그 후 신앙생활을 계속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정생활에 대한 바른 모델과 가르침을 얻지 못하므로 시행착오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회심과 함께 성경적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 많은 실수와 실패와 쓴 열매를 줄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회심 이후 나름 열심히 배우고 주님을 섬겨왔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적은 지식과 영적 미숙에서 오늘의 후회가 초래되었다는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른 지식과 좋은 모델을 통해 아쉽지만 부부의 질서를 새롭게 하고 킹덤제자도의 가정윤리를 이루어나갈 것을 선포합니다. 이같은 마음의 각오를 따라 아버지하나님의 아들됨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강력하게 인도해 나가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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