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창조반 제8강 소감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 맡기신 하나님"

창세기소감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2.21-22)

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에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각 사람에게 아내를 만들어 맡기시고 우리 각 사람으로 그 아내와 함께 자신이 의도하신 삶을 살도록 특권과 기회를 주신 사랑과 생명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번 8강의를 들으면서 이전에는 주목하지 못했던 창세기 말씀을 새롭게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는 구절입니다. 남자를 창조하실 때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창2.7)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자는 지으시고= He formed 인데 여자를 창조하실 때는 만드시고=He made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 모두를 지으셨다고 생각하기 쉬운 본문인데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남자에게 없는 특성을 여자가 가졌다는 것을 말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말씀입니다. 만든 재료가 다르고 날자도 다르며 목적도 다르다는 부분에서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 창조의 특성입니다. 남자는 흙을 취하여 '주형'을 하시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제조'를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주의 깊게,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같이 여겨집니다. 이 부분은 여자의 창조목적과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보아야 할 예언적인 내막이 있습니다. 남자의 마음의 벗과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야 하는 여자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자의 짝을 찾는 것 이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신비에 접근하여 하나님의 내심에서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경륜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담이 잠자는 동안 그의 허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그의 아내를 만드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그의 허리에서 아들의 아내를 취하시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만드시는 과정이 십자가라는 값 지불 후에 얻으신 것처럼 아담의 갈빗대를 재료삼아 만드신 섭리를 발견합니다. 우선 흙이 아니고 갈빗대라는 정교하고 값진 재료로 아담의 아내를 만드셨고, 그리고 형상을 주형하는 창조가 아니라 손으로 그 갈빗대를 사용하여 여자를 정교하게 만드시는 행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흙이 아닌 갈비뼈를 재료로 사용하였고, 남자의 몸에서 나왔으며, 손수 정성을 들여 만드신 여자의 진귀한 가치와 정교히 만든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에서 나의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찾아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기대하신 것은 그가 자기의 아내를 질이 다른 재료의 가치를 헤아려 존귀하게, 자신의 몸의 일부분이라는 차원을 감안하여 다정하게, 그리고 정성들여 정교하게 만들어진 만큼 민감하게 다루어 달라는 요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에 걸맞게 맞추어진 배우자요 동역자이기에 거기에 상응한 관계를 엮어가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번 8강을 들으면서 나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생활이 올 해로 34년째가 되어갑니다. 목사님의 강의를 좀 더 일찍 듣지 못한 아쉬움이 많습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초기에 이런 강의를 들었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많은 갈등의 아픔을 줄였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부부생활에서의 갈등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충돌을 피하고 실수들을 줄여나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선교사역이나 교회사역을 하는 동안 일어난 많은 관계적인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도 줄였을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 질서를 준수하지 못하여 동역이 순조롭지 못했던 아쉬움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해서라는 후회가 막심합니다. 가족사 안에서 만난 불행한 경험들, 특히 아버지 부재로 인한 가정결핍, 물질적 궁핍, 우리 가문의 여성들과의 관계의 불편이나 미숙은 내가 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오해나 편견을 낳았고 가족문화가 주입한 많은 그릇된 관습은 아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왜곡과 편향을 초래하였습니다. 결혼생활에서 일어난 문제들은 우리의 결혼생활이 성경적이지 못한, 즉 창조질서를 벗어난 틀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믿음생활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되었습니다. 결혼과 믿음생활이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다보니 성화와 결혼생활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실수와 갈등이 많았습니다. 세상에서 배운 것과 내가 가진 편견과 오해가 아내의 그것들과 맞물리는 상황이었는데 성경적인 결혼의 이해나 앞선 분들의 코칭이나 모델이 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믿음생활과 결혼생활이 외국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아쉬운 부분과 결핍들이 수두룩한 환경이었습니다. 아내를 귀하게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가정에서는 아내와 어머니의 존재란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자로, 세심하게 다루어야하는 파트너로 여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아내를 나에게 맞추려는 것과 아내의 성격과 습관을 바꾸어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오랜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아내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고 아내의 필요를 헤아리는 일은 서툴기 짝이 없었습니다. 많은 실패가 거듭되었고 많은 경우에 아내의 비난을 자초하곤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남성 우월사고가 스며있었고 아내의 나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는 일에는 많은 무지와 미숙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무시하는 말투와 내면의 교만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엡5.28) 말씀을 이해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습니다. 더욱이 남편으로서 아내를 아끼고 보양하는 영육간의 사랑은 좀처럼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엡5.25) 말씀은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자기애에 불과하지 않았는가를 자문하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감정을 다소나마 느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신부를 만들어내시는 의도를 깨닫고 거기에 부응하려고 힘쓰는 나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향해 가지는 뜨거운 감정을 내 아내를 향한 감정으로 순환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셔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자신의 아들에게 걸 맞는 신부로 단장되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오늘도 부단히 내 안에서 변화의 역사를 일구어 가시는 성령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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