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창조반 제7강 소감

"나를 위한 파트너를 예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소감문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혼자 살면서가 아니라 돕는 배필과 함께 즐거운 삶과 창조자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생각하며 나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님의 강의를 통해 돕는 배필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구상을 접하면서 결혼 전이나 결혼 초기에 결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이나 앞서가며 경건한 결혼생활을 해 나가는 모델적인 삶을 보지 못한 것이 퍽이나 큰 유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사람과 그가 자신의 대리자로서 어떻게 그 동산을 가꾸어 나가는지를 다루는 장면이 이번 7강의 주요 내용입니다. 에덴은 즐거움의 동산이며 하나님과 그의 기쁨의 대상인 사람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인간 사이에 사랑과 기쁨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만남과 교제의 즐거움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이곳 기쁨의 동산을 가꾸고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에덴의 즐거움은 인간이 부름을 받은 삶의 에너지이며 소명의 기반이었습니다. 이 기쁨의 동산에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짐으로 순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즐거움을 일구어 나가는 일은 자발적인 순종으로 엮어지고 그의 하나님과의 만남과 친밀한 교제로부터 나오는 다스림으로 가능하도록 되었습니다.

조세계를 다스리는 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을 계발하는 것으로부터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다스림이 인간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아담의 삶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생명력으로 영위되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서는 어떤 기능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하나님은 친밀함과 다스림을 연결시켜 놓으셨습니다. 친밀함과 사랑의 교제의 틀 밖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도 인간을 인간답게, 그의 사명을 의미있게 할 수가 없도록 되었습니다. 에덴에서의 다스림은 단순히 여러 사실이나 경험, 지식과 정보에 근거하여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다스림은 언제나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과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와 그에게 다가가 묻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인간이 위임받은 다스림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스림은 친밀함, 빛 가운데 거하는 삶과 돌봄의 사랑으로 수행되는 것입니다. 다스림은 예배의 영으로 충만한 인간이 그의 하나님에게 묻고 그에게 다가오는 인간의 필요에 기사와 이적과 함께 친근함으로 응답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상호 작용하는 것과 같은 차원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하신 하나님이 아담의 삶과 사역을 보시고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한 동역자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이 뭔가를 빠뜨렸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최선을 놓치고 난 후 차선책을 마련하시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창조가 의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이땅과 그것을 다스리는 사람의 일에서 창조의 역사를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자신이 지으신 사람을 향한 자신의 좋은 뜻, 기뻐하심을 입은 자를 향한 자신의 흐뭇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돕는 배필을 주시겠다는 뜻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의중에 있었던 복안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에덴의 삶을 살며 다스리는 일에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에 불과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문화명령'을 이루는 일에 동역의 가치를 부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홀로 거처하며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인데 여기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갈망을 담아내는 예언적 그림의 하나였습니다.

둘째 아담을 위한 원래의 계획을 예언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래하는 세대에서 자신의 아들이 그의 신부를 파트너로 함께 다스리는 것을 설계하신 것같이 첫째 아담이 그의 동반자와 함께 하는 것을 설계하셨습니다. 보완적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인격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묘책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비켜갈 수 없는 인격의 도야과정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제자훈련의 장이라는 사실을 결혼생활을 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무척 후회가 되었습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초기에 이같은 강의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부부생활이 '불훈련'이라 하신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설계하신 의도를 잘 대변하는,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 그 자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과 함께 나의 인격이 변화 되어 가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신 말씀이 나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나는 학업이나 사역이나 무엇이든지 나에게 주어진 것을 잘 하려는 의욕이 강했습니다.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맡겨진 일을 잘 하려는 경향은 지난날 나에게서 발견되었던 패턴이었습니다. 나의 인격을 다듬어서 자기 아들의 형상에 가깝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고아심리와 결핍에서 연유 되는 몸부림이 나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형제간의 동역과 부부간의 조화를 통해 우리의 인격과 사역 모두를 성화시키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서 동역할 수 있는 인격을 다듬어 가시고 '동역의 묘'를 살려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선포합니다! 그같은 '건설적인' 동역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성령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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