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창조반 제1강 소감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소감문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난날 어두움 가운데 거하며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채 방황하던 저를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창세기 1장3절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면서 빛을 존재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위력적인 일을 하시는 분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만 하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 어떤 다른 언급을 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그 어떤 소개의 필요성이나 왜 소개를 하시지 않는지에 대한 일말의 배경설명 조차도 하시지 않고 계십니다. 단지 명료하게 "태초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실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분에 대한 해명은 필요치 않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는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성이나 그분의 자기주장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 같으면 이같은 절대성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당연시 하시는 이 하나님을 각방으로 험담하겠지만 나에게는 그같은 자기해명을 필요치 않음을 인하여 '계시자' 성령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존자, 곧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자기 자신을 나의 영에 계시해 주셨으니 저 자신이 얼마나 큰 선행적인 은총을 받았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스스로 자기 안에 생명을 내재적으로 가지신 분께서 생명의 빛과 생명을 위한 빛을 내신 일은 너무도 경이롭습니다. 빛과 그 에너지는 만물을 가동하는 동력이기에 생명체를 위해서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존재를 명하셨고 존재케 됨으로 다른 피조물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해 주게 되는데 그같은 착상을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창의력에 감탄하며 생명을 부여받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저로서는 만만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빛"이라는 개념을 내시고 그 실제적 '빛의 개념'을 빛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근원적으로 빛이라는 피조체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여기서 하나님은 그 빛을 "있으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빛의 존재를 명령하시고 그 실제적 존재가치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포입니다. 창조를 선언하심과 동시에 빛이 명명되는 순간입니다. 빛을 존재케 하시고 또한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이시는 행위인데 창조에 연이어진 한 차원 높은 주권적인 통치행위입니다. 마치 인간의 차원에서 자신이 발명하여 그 아이디어를 제작하는 자가 자신이 만들었기에 자기가 소유하고, 자신이 소유한 것이기에 임의대로 이름을 주어 그 이름에 따라 용도를 지정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창조와 동시에 이름을 부여하는 명명도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새로운 것의 창조와 그 제작물의 이름이 명명되는 것은 너무나 신기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 피조물이 땅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느끼는 신비 비슷한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안인데 만들어짐을 당하는 우리들에게는 경이의 대상이며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각기 그 존재성을 부여받는 순간이며 피조세계로 보냄을 받는 미션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목적은 창조자에 의해서 부여되기에 저 자신이 이같은 창조자의 계획과 목적을 따라 지어진 것이라 믿으니 얼마나 나의 삶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저는 창조자만이 가지는 특권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인데 이것이 아담에게로 위임되는 사실을 보면서 이름을 부여하는 특권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적 축복이자 주신자의 의도를 따라 동일하게 행할 수 있다는 진리를 접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땅의 지배권이 아담에게 위임되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세가 우리들 인간에게 주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땅을 하나님의 킹덤 '식민지'로 바꾸어 나가라는 이 위임명령은 아담에 의해서 곧바로 준행되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아담이 자기 앞으로 나아오는 모든 여타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주는 이 행위에서 저는 그가 다스리는 자임을 드러내는, 통치권을 행사하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다른 피조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행위입니다. 지위의 상위개념이며 통찰력의 구사라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위임된 이 하나님의 위임명령이 주 예수를 믿고 그를 이 땅에서 대신하고 그의 킹덤을 대표하는 저희 모두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고 그 목적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제가 먼저는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그리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삶을 나누고 함께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전해주는 메시지임을 확인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죄인을 구속하셔서 이같은 놀라운 특권가운데로 불러주신 사랑의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3.14-15).

조와 동시에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행위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놀라운 진리는 여기서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이름을 주시고 또한 나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하시는 분이 아버지들의 아버지, 곧 나의 아버지라는 이 말씀은 무한한 경외감을 불러 옵니다. 나를 아들삼으신 아버지께서 나도 아버지가 되어 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름을 부여하게 하신 나의 하늘 아버지를 송축합니다! 지상의 아버지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듯이 나를 지으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머리숙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같이 놀라운 특권과 영광을 주신 주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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