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말씀(2017.09.23)

오늘의 말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7:28)


멘입니다. 반가운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내가 세례요한 보다 크다고 하시니 먼저 이 말씀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을 거명하며 전하신 말씀입니다. 일단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나라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을 필요가 있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말을 먼저 주목합니다. 이것은 요한이전의 모든 사람들을 지목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역사가운데 등장했던 소위 위인이라는 영웅들이 모두 들어갑니다. 구속사 가운데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모든 크고 작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물론 구속의 역사 가운데서 메시야를 예언적으로 드러냈던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밖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인물들보다 세례요한이 더 위대하다고 하시는 주님의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비교하심이 이례적입니다. 비교가 3-4단계를 거쳐나오고 있습니다. 맨먼저는 역사적인 위인들이 거론됩니다. 그들 모두에게 비교된 인물이 세례요한입니다. 요한이 그들보다 더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에 비교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인물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통하여 도래한 나라,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강조하는 화법으로 주님은 그들중에서도 킹덤에서 가장 미미한 사람, 작은 자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같은 자도 요한보다 더 크다는 말씀은 의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뭔가 치중하시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안에서 사는 자가 요한보다 더 크다는 말씀에는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서 예수께서 거론하시는 것은 위대성입니다. 누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누가 더 위대한가 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누가 더 위대한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성의 기준을 누가 정하며 그 척도는 무엇인가 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사람이 기준과 척도를 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인이신 세계에서는 하나님이 기준을 정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 차별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준은 업적입니다. 결과물입니다. 남긴 것입니다. 가시적입니다. 외관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면에 치중하십니다. 중심을 보시고 자신과 가진 관계의 친밀도를 보십니다. 그의 기준은 내적인 정체성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업적을 얼마나 남겼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그 일을 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동기로 그 일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인, 양적인 부피를 가지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위대성의 기준이 절대적인 업적의 크기에 달려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가진 관계성과 그가 살고 있는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요한과 자신이 펼치고 있는 '시대적인 일'에 주목할 것을 계몽하고 계십니다. 요한이 활동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요한이 도덕성이나 거룩함에서나 하나님에 대한 충성도나 친밀함에서 더 뛰어났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더 많은 은사나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같은 기준으로 보면 구약에는 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역을 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이 가진 자신과의 관계성에서 그의 위대성을 찾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요한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요한이 율법의 시대와 은혜의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에서 한 역할에서 그의 인물됨을 찾습니다. 새 시대를 열고 메시야의 길을 터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이 차별점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구 세대를 접고 새 세대를 여는 자신의 역할과 연관해서 요한이 시대적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례요한은 메시야의 강림시대에 하나님이 인정하신 최고의 권위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권세 가운데 유일하게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던 권위자였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다가가셔서 세례를 받은 권위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공적으로 풀어내준 권위자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인물됨은 거기까지 입니다. 요한이 옥에 갇히면서 그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세례요한까지 입니다. 요한의 뒤를 이어 나사렛 예수가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킹덤선포는 새로운 권위체계를 출발시켰습니다. 바로 킹덤정권의 출현입니다. 오는 세대의 정권, 하나님의 킹덤의 도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킹덤의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큰 자가 되는 킹덤세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을 비교할 때, 모세의 율법아래서 인간이 가졌던 지위나 특권보다 자신이 가져온 킹덤의 새질서 아래서 킹덤의 제자들이 갖는 지위와 특권을 비교할 때 그같은 비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져오신 킹덤이 이전 세대의 모든 것을 뛰어넘게 만들고 새 세대의 영광가운데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이런 주님과 가진 관계성이 요한을 그 모든 다른 선지자들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같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자가 킹덤의 제자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킹덤안에서 발견되는 가장 작은 자라할지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차별의 기준은 제자가 가진 지위와 특권입니다. 킹덤의 주와 갖는 관계성과 그 관계가 주는 부요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과 킹덤축복 입니다. 킹덤의 왕을 아버지로 모신 아들의 신분과 그 신분이 부여하는 영광입니다.


것은 율법 세대의 축복과 킹덤 세대의 축복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요한은 율법세대에 살면서 이제 오시는 메시야를 소개하는 차원의 축복만을 누린 인물입니다. 킹덤의 축복을 구가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메시야에 앞서서 그를 직접 소개하고 그를 영접토록 길을 예비하는 메신저라는 차원에서 그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만 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에 비하면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이후의 예수의 제자들은 이미 오신 메시야를 인격적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킹덤을 받들고 그 킹덤이 주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이 받은 축복과 킹덤제자들이 받아누리는 축복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킹덤제자는 차원이 다른 축복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근원적인 축복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성령과의 친밀도가 바로 제자가 누리는 축복의 총화입니다. 그 모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부분적으로, 은사적으로, 일시적으로, 몸 밖에서만 주어졌습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의 충만을 모두 누리지 못했습니다 (요1.15-17, 마3.14). 그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요한에게는 성령이 인격으로 오시는 내주하심은 없었습니다. 그는 영의 새로운 세대를 여시는 메시야를 소개하고 그 축복을 알리는 역할만을 하고 사라져 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예수의 제자가- 비록 가장 작은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한 내주하심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7.37-39, 14.12-15, 엡3.19).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든 성령의 은사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정한 은사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킹덤제자는 이제 모든 은사들을 가질수 있습니다 (막16.15-20, 요14.12-15, 고전12장). 복음이 약속하는 여타 많은 축복들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주어질 수 없었습니다 (고후3.6-15, 히8.6, 벧전1.10-12). 그러나 이제는 모든 제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이 오셔서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다른 세대에 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를 통해 영의 세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 거처를 함께 하시는 킹덤세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같은 일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나를 복받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인 세례요한을 능가하는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내가 대단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묵상하십시다. 감사하십시다. 누리십시다. 자랑하십시다. 노래하십시다. 킹덤이여, 그 왕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재림의 주시여! "킹덤 피플- 축복의 주인공 피플"


킹덤샬롬♡♡


2017.09.23 by Jonathan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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