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포도원’으로(II)-아들의 ‘눈’을 통해

[TESTIMONY#24]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말씀은 “사도적인 기도”라고 불려지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다. 광야에서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주께서 나에게 명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의 삶의 방향과 미션을 언급하시며 구체적으로 이 말씀으로 기도하도록 지시하셨다. 뒤늦게 놀라운 은혜와 위로로 다가온 이 말씀은 내가 아들의 ‘마음과 눈’을 사모하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다. 캔사스시티 아이합의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성령을 위로의 하나님으로 새롭게 대면하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 기도할 것인지를 지시 받았다. 영적 정체성의 대전환을 체험하던 시기였다. 나의 영적 고아적 심성이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으로 전환된 때였다. 2013년4월의 어느 아이합의 주말집회 때였다. ‘아버지의 마음’에 목말라 하던 나는 그날의 설교를 통해서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미니스트리 시간에 기도를 받으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4-5미터 뒤로 물러나가 떨어졌다. 그러면서 곧바로 주님과 영교에 들어갔다. 깊은 교제 가운데서 주께서 속삭여 주셨던 이 말씀은 그 시간 이후 나의 매일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가는 일을 갈망하고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는 운명적 부르심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을 갈구하는 일은 나의 갈망의 수준과 기도의 목표가 되었다. 예수님 자신이 사신 아들의 삶을 고난과 함께 감내하며 살아갈 것을 제시하며 주신 이 기도는 그때 이후로 나의 운명적인 부르심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과 삶과 사역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모델로 나의 심령에 깊게 각인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향해 가지신 불타는 감정을 알아가야 했다. 나의 감정을 통해서 아들의 불타는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채널이 되어야 했다. 그 일은 정작 내가 이제 후로 살아가야 할 삶과 사역의 핵심이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의 아들에게 전달되어 아들의 심령을 통해 표현된다. 아들의 심령은 그의 마음의 눈이다. 아들의 눈은 아버지의 마음과 생각이 그의 백성들을 향해 흐르는 은혜의 대하이다. 마음이 근원이고 눈은 그 채널이며 손은 그들이 함께 사용하는 도구이다. 마음이 먼저면 눈은 그 다음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법이다.

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따라 전도자로서 사역할 것을 확신했다. 심판대를 보여주셨고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게 하셨다. 처음 믿음을 시작하는 시기에 전도자의 소명을 주셨던 주님은 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너는 전도자가 될 것이니라!”고 직접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환상 가운데서 열을 지어 행진하는 많은 무리가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는 모습도 보았다. 그 환상 중에 나는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드리워 그늘을 만들며 행군하며 나아가는 우리를 에스코트하는 장면도 보았다. 군대처럼 대열을 지어 행진해 나가는 한 행렬의 선두에 선 나의 모습도 보았다. 그 환상 중에서 나는 선두에서 플래카드를 치켜들고 행군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내가 앞으로 많은 무리를 이끌고 주님 앞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오랜 기간 그 비전이 이루어 질것을 기대하며 지냈다. 한동안 그 같은 대중적인 사역이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서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생각하며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의심 나게 할 때도 있었다.

랜 세월이 지난 후에 나는 예언적 그림과 환상들을 해석하는 법을 접하게 되었고 내가본 환상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예언적인 말씀과 환상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비전이 약속으로 주어져도 비전을 받은 당사자가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도를 하면서 그 비전을 끌어당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본 환상과 그 예언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도 서툴렀다. 사실 그 환상 안에는 내가 간과했던 두 가지 사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는 내가 본 환상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서 내가 본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달려계셨다. 그런데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또다시 달려들어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미 십자가위에 달리셨고 피를 흘리고 계셨는데 다시 사람들이 못을 박는 장면이었다. 내가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실재하는 교회들의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또다시 자기들의 구원자를 못박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가 구원을 받았지만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구원은 받았다고 하지만 실재에 있어서는 다시 복음이 필요한 교회의 영적 상태였다. 내가 본 환상은 교회 안에서 다시 구원과 주되심의 복음이 절실한 현실을 묘사하는 그림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환상에서 내가 들고 있던 플래카드의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플래카드를 치켜들고 선두에서 행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의 환상에는 플래카드 위에 아무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내가 잡고 있던 플래카드의 의미나 내용을 알지 못했다. 단지 내가 사람들을 십자가 앞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으로만 이해했다. 복음사역을 하면서 앞으로 내가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때는 내가 광야대학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풀스태춰의 메시지들을 접하면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어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심플한 기도를 하는 가운데 다분히 한가하고 정숙한 기도분위기가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내게 뭔가를 보여주시고 계셨는데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 환상을 기억나게 하셨다. 거기서 나는 한때 내가 치켜들었던 플래카드에 글씨가 적힌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씨를 보면서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내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이제 와서 35년 전에 보았던 그 환상을 다시 보면서 그 플래카드에 적힌 글자를 읽게 된다는 말인가! 나는 그 플래카드에 분명하게 “FULL STATURE”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놀란 가운데서도 나는 또한 이해가 되는 면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를 인도해 나가신 궤적 때문이었다. 내가 앞으로 선포해야 되는 메시지는 ‘풀스태춰’라는 메시지였고 해야 하는 사역은 풀스태춰 치유접근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었다. 풀스태춰의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적었고 아직은 정리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를 그 미니스트리와 연결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풀스태춰 본부에 훈련을 받으려 가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예전에 보았던 십자가위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고 계시는 그에게 다가가 다시 망치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이의 연관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것이 풀스태춰와 연관이 되는지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창시하고 그 사역을 지도해나가는 데니스 목사가 하는 말에 그제야 수긍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며 마음 안에 아직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확립되지 않았고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마음에 빛이 들어가지 않아서 여전히 어둠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들어가도록 하는 복음전도자라고 했다. 신자들의 마음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쓴뿌리를 파헤치고 그 뿌리체계를 파괴하여 새피조물 정체성을 심는 사역을 하는 ‘마음사역자’라고 했다. 지난 과거의 상처들로부터 분출되는 독성 감정들, 스스로 묶어놓은 자기 맹세와 판단의 산물들, 내면 깊숙한 혼적 묶임들을 풀어헤쳐서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심겨 성숙에 이르게 하는 치유사역자라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어떻게 풀스태춰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야 하고 그가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셔야 한다. 그 말은 교회 안의 주인 되신 성령을 주권자로 모시고 그분으로 주인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과 교회는 그들 각자의 고백과는 다르게 행한다. 그를 주로 시인하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의 인격과 삶과 사역 안에서는 주로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풀스태춰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How to make Christ the Lord”이다. 이 말은 “우리의 인격과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며 드러낼 것인가” 라는 뜻이다. 풀스태춰의 어노인팅은 영적 생활의 실제적 방법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말한다. 신자의 마음을 다루고 그의 마음이 주께로 향하게 만드는 사역이다. 풀스태춰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조명과 통찰이 탁월하다. 이 미니스트리에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의 영광의 소망이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다. 여기엔 나에게 다가온 그리스도가 나의 용서자, 치유자, 위로자라는 이해가 깊게 조명되어 있다. 풀스태춰는 그리스도를 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과 24/7 영교하도록 돕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역이다.

는 주께서 이 마지막 세대 안에서 두 가지 사역에 주안을 두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하나는 기도 무브먼트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육성이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이므로 당연히 여기엔 초자연성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마지막 세대의 교회를 기도하는 교회로 세우시고 기도실을 중심으로 교회의 모든 사역이 움직여가도록 지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사단이 주인된 이 악한 세대를 제거하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킹덤을 완성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기도하는 교회가 하늘에서 이 세대 처리하시는 사역을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동역하는 교회가 되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이 땅의 교회가 기도하며 전투하는 신부교회로 단장되길 원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이 마지막 세대 안에서 특별히 자신이 아버지로서 시위되는 것을 원하신다. 그는 자신이 자녀들을 가진 아버지이며 그의 성숙한 아들들이 한 몸을 이룬 가족공동체로 나타나기를 계획하고 계신다. 한 몸으로서 세워지고 가족공동체로 성숙해가도록 하는 사역은 마지막 세대의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시대적인 소명이다. 이 땅의 교회가 순수성을 회복한 그리스도의 신부공동체로 세워져 가야 한다. 신부공동체가 되려면 마음의 순화, 감정의 정화작업은 필수적이다. 바로 그 사역이 풀스태춰의 감정치유와 회복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세대의 전략은 기도의 집이라는 하드웨어와 공동체 세우기의 소프트웨어이다. 이 두 전략으로 주님은 마지막 세대가운데서 교회를 준비시켜 나가시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자신의 교회로 하여금 성령의 신부공동체, 아바의 가족공동체, 그리스도의 군사공동체로 세워져 가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음에 소개하는 환상은 일찍이 내가 치영원에서 수학할 때 주께서 내게 보여주신 환상들과 그 맥을 같이하는 그림이다. 나는 이 환상들을 내게 적용되고 나의 미래적 사역과 연관된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 환상들이 미구에 나의 사역현장에서 이루어지게 될 예언적 미래로 받아들인다. 당시에 그 센터에서 이루어내지 못한 예언들을 나의 사역현장에 적용하고 그 예언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추구해 나가고 있다. 나는 그 예언들이 지금의 나의 사역 안에서 그리고 장차 이루어지게 될 사역을 통해서 실현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 환상들은 내게는 대단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미래적인 환상들이다. 내가 당시에 받았던 환상은 나의 저널링 노트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2009년3월5일에 치영원에서 본 환상

째 환상: 2009년3월5일 돌파기도회 때 내가 본 환상이다. 학장의 메시지선포가 끝나고 기름부음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기도를 받고 쓰러져 누었다가 양촌 위의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다. 열린 하늘 위에서부터 비스듬히 아래 센터 앞마당까지 걸친 컨베이어가 보였다. 그 컨베이어를 타고 하늘 위로부터 내려지는 것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서 ‘잡다한’ 것들이 내려온다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니 하늘의 ‘오곡 식량’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꼭 다섯 가지란 말은 아니지만 땅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색다른 식량이었다. ‘하늘의 식량’이 그 센터에 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받아 내거나 그 사실을 알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 식량이 그 센터 앞마당 바닥에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알아차린 리더들이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 식량을 컨베이어로부터 곧바로 받아낼 수 있는 컨테이너들을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땅바닥으로 쏟아지고 있던 식량은 이미 땅에 수북하게 쌓여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리더들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컨테이너를 가져오자 곧바로 컨베이어로부터 받아서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그 센터의 사람들이 배급을 받았고 식량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오자 그 리더들은 각지로 배송하라고 지시했고 국외로까지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운반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장면들이 지나가고 이번에는 뚫린 하늘에서 그 센터 위로 직선으로 내려진 큰 관이 보였다. 그것은 송유관 같은 큰 파이프였다. 관의 맨 끝 위로부터 무엇인가 뭉친 것들이 방울방울 내려오나 싶었는데 아래로 내려오면서 기름으로 변하고 있었다. 관을 타고 내려온 기름이 땅바닥에 쏟아지고 있었다. 한 참이 지났나 했는데 리더께서 사람들에게 항아리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각기 항아리를 가져와서 기름을 받아가고 계속적으로 흘러내리는 기름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원근각지로 배송되고 국외로 내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째 환상: 학장께서 돌파기도회 저녁 설교를 마치신 후 미니스트리 시간에 ‘제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내었다. 많은 목회자 학생들과 함께 나도 단상 위로 나갔다. 주께 절규하며 간구 드린 후 나는 그 단상 위에서 여러 가지 심상찮은 현상들과 진동을 느낀 후 뒤로 넘어졌는데 그때부터 임재 가운데 들어갔다. 나는 그 순간에 주님과 대면하면서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흥미롭고 신나는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고 이 그림이 지나간 직후 새롭게 펼쳐진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 내게 보여주신 것과 같은 열린 하늘이 펼쳐졌다. 하늘에서 그 센터로 비스듬히 드리워진 컨베이어도 동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위로부터 그 컨베이어를 타고 내려지는 물체들이 신기한 것들이었다. 분명히 과일류였는데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우선 굵기와 크기가 달랐다. 갖가지 과일들이 컨베이어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포도송이 같기도 하고 다양한 과일들이 뒤섞여 내려오고 있었는데 땅에 닿자마자 연이어 사람들이 곧바로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센터에만 주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것들이 다른 곳으로 배송되지 않았다. 그 센터사람들만이 먹고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찬 모습을 하고 서로들을 얼싸안고 환희에 젖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즐겁다 못해 울기도하면서 감격해 했다.

그런 후 장면이 바뀌었다. 하늘위로부터 그 센터 아래로 곧바로 송유관 같았던 그 관을 타고 뭔가 번쩍거리는 뭉치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맨 위 꼭대기에서 밝고 환한 빛들이 비취고 아래로 계속 뭉치들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그 뭉치들이 다양한 크기를 가졌고 색깔도 다채로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석류 귀금속들이었다. 그 보석들이 다발같이 그 센터로 떨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제각기 필요를 따라 가져가고 있었다. 센터 리더들은 계속 쏟아지고 있는 보석들을 보고 그것들을 상자에 담아 곧바로 각지로 보내라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배송이 끝났나 했더니 이번엔 국외로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운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센터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척 신나는 일들이 전개되는 장면들이었다.”


환상이 주어졌을 때 나는 그곳에서 수학하는 학생이었다. 학업을 마치면서 나는 그 연구원의 교수로 임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나는 주께서 내게 주신 비전과 그 동안 내가 가꾸어 온 비전들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지 않아서 사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곳을 떠나긴 했지만 나의 비전이 사장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24/7-기도와 치유의 집”이라는 비전을 간직하며 그 실현을 모색하며 지냈다. 때를 기다리면서도 스스로 그 비전을 이루어 보려는 시도도 해보았다. 주께서 지정하신 때는 도래하지 않았다. 나에게 광야의 인내와 연단이 필요한 사실을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진정한 포도원은 광야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채비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야 할 소재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고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메아리에 불과했다. 나는 여전히 나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은 알지를 못했다. 나는 메아리가 아니라 ‘목소리’가 되도록 준비될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는 메시지를 담는 그릇의 사명이 있었다. 이제 그 때가 도래하고 있었다. 주께서 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나로 그 목소리를 대언하도록 하실 계획이셨다.

하나님의 ‘아버지마음’이 전수되었던 날 나는 그날의 체험이 그곳에서 받은 환상과 은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게 일어난 ‘대지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나에게 특별한 여진이 주어졌다. 그 여진은 그 다음날에 일어났다. 아버지를 만나자 나는 아들의 기쁨이 충만했다. 다음날 기도하면서 나는 어린아이가 아빠를 찾아가서 그의 품에 안기듯 아바 아버지를 찾아나갔다. 나의 아바 아버지가 보좌에 앉아계셨다. 나를 보시자 왕좌에서 내려오시더니 재빠르게 나를 보듬어 안으시고 두둥실 흔들기 시작하셨다. 한참을 그렇게 하시던 아버지께서 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곁에 계시던 맏아들 예수님을 향해서 “예수, 이 조나단은 너의 동생이야”라고 하셨다! 그러자 예수께서 나를 그의 오른 팔로 휘감아 안으셨다. 그리고 장면은 바뀌었다. 오른 손으로 나를 휘감으신 예수님의 왼편이 그림으로 펼쳐졌다. 무수한 사람들이 줄줄이 널어 선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자녀들이며 그의 형제와 자매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또한 나의 형제와 자매들이라고 알려주셨다. 나만이 예수님의 형제가 아니라는 암시였다.

는 최근에 모듈강의를 하면서 너무도 놀랍고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 실습은 말씀 받기였다. 우리 모두가 주의 임재를 기다리며 주께서 각자에게 다가오시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분이 주시는 말씀을 받는 연습을 할 때였다. 영적 분위기가 주의 임재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에게 다가온 놀라운 은혜가 있었다. 그것은 주께서 예전에 보여주신 형제와 자매들과 연관해서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주께서 그 짧은 환상 중에서 나에게 형제와 자매들로 보여주신 그들은 나를 ‘모판’삼고 만들어내실 킹덤라이프 공동체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렵고 떨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은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메시지였다! 나에게 4년여전에 보여주신 그 그림이 이제 앞으로 만들어질 공동체의 멤버들인데 나를 모판삼고 빚으시는 공동체라는 사실에 나는 이러실 수가 또 있을까 싶었다. 나를 오랜 기간 빚어가시더니 나 같은 성품의 ‘예수인’들을 공동체로 엮으신다는 말씀이셨다.

이런 현실 같지 않은 사실은 내가 풀스태춰 훈련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한 예언사역자의 섬김을 통해 확인되기도 해서 나는 다만 하나님의 이끌어가심에 경의를 표현할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예언이라서 두렵다. 그리고 내가 나의 예언적 미래에 대해서 받은 기도사역을 언급하는 것이라 조심스럽다. 여기서는 그때 내게 전달된 모든 예언적 발언들을 인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우리 부부에게 전달한 예언의 말씀은 간추려 이런 구절들을 담고 있다. 간간히 들려진 내용을 정리하여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셀라”- 2015년5월30일에 모닝스타에서 받은 예언 중에서

“…나님은 당신 안에 담아 놓으신 것들을 쓰실 것이다. 당신이 보낸 고난의 시간들은 허송된 세월이 아니다. 당신 안에서 행하신 그분의 일들은 결실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곳의 모닝스타 리더처럼 한 미니스트리를 리드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일단의 사람들을 지도하게 될 것인데 그들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마음과 일상의 삶에 대해서도 권위자로서 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그 동안 준비해온 한 사역을 당신으로 리드하도록 하실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가진 치유와 해방의 필요를 채우는 능력자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터치를 받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다. 당신은 점점 더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해치려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을 바로 이때를 위해 구별해 놓으셨다. 주께서 4-5년전에 당신에게 말씀하셨고 약속들을 주신적이 계신다. 하나님은 곧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에게 다가오실 것이다. 당신은 주께서 당신을 부르시면서 의도하신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 안에 지식과 지혜를 담아놓으셨고 그의 영광과 킹덤을 위해 그것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당신의 손은 치유의 손이다. 당신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치유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당신은 책과 또 책들을 쓰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과 공저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간에 행하시고 말씀하셨던 일들을 기록해 놓으라.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당신은- 당신 안에는- 당신이 사람들을 섬길 때 필요한 은사들과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당신이 세상에 드러날 시간이 되었다. 당신은 그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주님을 잘 따라주었다. 당신은 순종을 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근 각지에서 와서 당신의 말을 들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뭔가 대단히 특별한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큰 권위와 능력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에 당신은 하나님의 킹덤을 위해 탈취물을 노획해서 가지고 올 것이다. 당신은 큰 어노인팅을 부여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했으므로 당신의 마음은 수많은 아들과 딸들을 끌어오게 될 것이다. 당신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마인드도 가졌다. You are a real deal. 당신에게는 간사함이 없다.”

이렇게 예언해 주신 분은 모닝스타 미니스트리에서 예언사역으로 크게 이름난 사역자였다. 우리는 그 분을 그때 처음 만났다. 그전에 그를 알지 못했다. 그도 우리가 누군지를 몰랐다. 나는 그분과의 만남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분이 나에게 다가와서 만남을 제안했다. 며칠 후 그분이 나와 아내에 대해서 기도하고 난 후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그날의 예언사역은 30-40분간 진행되었다. 여기 언급한 것은 위의 주제와 연관된 부분을 인용하기 위해 건너뛰며 압축한 내용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기 위해 그곳에 좋은 ‘복병’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었다. 나는 이 예언의 말들을 듣고 크게 위로를 받았다. 예언은 격려를 위해 주어졌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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