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포도원으로(Ⅰ)-아버지의 마음으로

[TESTIMONY#23]

말씀은 내가 “사역”을 위해 청라 국제도시에 거주하고 있을 때 주어진 말씀이었다. 그때는 내가 ‘아골’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청라는 내가 사역을 염두에 두고 옮겨간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신중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부르니 하나님의 뜻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그곳은 내가 깨어지고 낮아지는 단련의 장소였고 우리를 위해 ‘소망의 문’으로 예비된 아골 골짜기였다. 나는 당시에 내가 사역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께는 나의 사역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다루어져야 할 문제의 사람이었다. 주님은 나를 위해 계획된 프로젝트를 가지고 계셨다. 그는 나를 먼저 ‘아골골짜기’ 같은 곳으로 불러내시고 자신의 목적에 걸맞는 사람으로 만드실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육신을 깨뜨리고 내 안의 영의 사람을 새롭게 세우시려는 고육책 같은 것이었다. 고난의 와중에서 나는 이 말씀이 시사하는 참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위로의 차원에서 주어진 말씀이긴 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내게 위로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는 양날 가진 검이었다. 그러나 먼저는 집도의의 수술칼로 다가온 비수 같은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여기엔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이 말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의도가 해석이 된 이후 나는 우리가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에 와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나의 포도원은 아니었다. 적어도 현재는 그랬다. 포도원으로 나가는 길은 요원했다. 먼저는 골짜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겨우 그 길목에 다가와 있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깊은 마음을 대하고 마음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전 받고 아들로 회복되는 과정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 말씀은 그 과정의 초입에서 내리신 진단적인 말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메시지의 취지는 위로와 소망을 주려는데 있었다. 필경은 “회복이 있을 것이다”는 소망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가 우리에게 다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미국 아이합 대학에 수학하던 아들도 동일한 본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나는 그가 우리와 나눈 것을 ‘싸인’으로 받았다. 우리부부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살고 있는 장소는 주님의 의중에 있다라는 메시지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로부터 3년이 지난 후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방문하기 위해 나는 미국을 다시 찾았다. 그때 나는 데니스 클락목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데니스로부터 나는 그의 영적 아들로 ‘입양’을 받았다. 그는 나를 멀리서 온 아들(사60.4)이라 환영하고 사랑으로 영접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영적 리더로부터 처음으로 ‘아들’로 입양되는 ‘사건’이었다! 내가 드디어 누구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며 살아온 나에겐 긴 여정의 대단원이었다. “아들 역할을 하며 살라”고 지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낸 여정 끝에 일어난 후한 보상이었다. 아들로서 영접받고 사역의 위임을 받은 일은 주께서 바로 그 전년 말에 “내 년에는 내가 너에게 새로운 사역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들의 역할’을 감당한 이후에 주신 인정이었다. 그 인정은 아들이 되는 과정에서 시험의 단계를 거치며 이제는 사역현장으로 불러내시는 표시였다. 나는 우리가 미국에 가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전혀 의도한 바도 없었다. 나는 단순히 풀스태춰 미니스트리의 메시지와 사역 자체에 매료되어 그것을 추구한 것뿐이었다. 2015.5.29일에 나는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로부터 사역위임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수개월에 걸쳐 풀스태춰의 책과 자료들을 번역하고 교재를 만들며 구체적인 사역준비를 했다. 나는 그들이 증거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나를 인도해 나가신 주님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때때로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사역을 맡게 되었고 어떻게 그런 놀라운 사람들과 동역할 수 있게 되었지?”라며 감격하곤 했다. 내가 풀스태춰 미니스트리 사람들과 사역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생각하며 감격을 거듭했다. 세대 말의 메시지를 나에게도 맡겨주신 하나님의 호의가 너무도 감사한 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람들을 보듬고 돌보는 아버지의 마음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주님은 이제 나를 사역의 현장으로 불러내시고 그의 포도원으로 들여보내고 계신다.
뒤돌아 보면 귀국하여 내가 걸어온 길은 거듭된 하강 길이었다. 주께서는 나를 아들로 부르시기 전에 나의 고아적 사고와 행동패턴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셨다. 그리고 아들이라 칭하시고 아버지로 나서기 전에 먼저 아들로서 그 삶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인도해 나가셨다. 오랜 인내와 연단의 과정 후에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그의 자녀들을 돌보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셨다.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챙기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불러내신 것이다. 주께서는 먼저 나를 거친 들로 ‘개유’하셔야 했다. 나를 유인해 나가신 것이다. 거친 들에서 나를 낮추시고 깨뜨리셨다. 그리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주셨다. 그는 나에게 포도원을 주시기 전에 광야를 걸으며 아들로서의 행보를 연습하게 하셨다. 포도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아버지마음’을 전수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사용할 수 있는 권위를 위임 받기 위해 ‘아들됨’을 살아내야 했다. 묵묵히 순종을 배우며 권위에 복종하는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을 지나가야 했다.

야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40일을 금식하는 기회를 가졌다. 의도는 내가 다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며칠간을 금식하며 주님 앞에서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하려 했다. 그러나 처음 의도했던 그 며칠간은 40일로 이어졌다. 주께서 그것을 원하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내가 하게 될 사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참되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나는 주께서 이 나라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리고 그가 이 나라의 교회에 관하여 갖고 계신 마음과 계획을 알고 싶었다. 킹덤의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에 관한 한 그 나라의 교회가 관건이다. 하나님은 나라를 다루실 때 언제나 그 나라의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을 의제로 삼으신다. 진심으로 나는 교회의 주께서 이 나라의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 관해서 가지신 마음과 그의 관점을 알기를 원했다. 그리고 허물 많은 나에게도 자신의 마음과 관점을 알려주시길 간구 드렸다. 온전하진 않겠지만 그 과정 가운데서 나는 이 나라와 이 나라 교회에 대한 주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하나님은 사56.9-12절을 기억나게 하시고 자신의 마음을 읽도록 하셨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무책임한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다. 이것은 오래 전에 내가 ‘치유영성연구원’에서 수학할 때 그곳에서 받았던 환상과 맥을 같이하는 메시지이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시대와 상황의 흐름을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눈을 가졌지만 소경과 다름없었다. 그들에게는 정작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명철은 없었다. 그들은 무익한 목자들이었다. 언약의 하나님의 마음에 관한 한 그들은 무감각했고 역사의 주관자의 계획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그들은 불의와 타협하는 사이비지도자며 안일한 몽상가들이었다. 그들은 무사태평을 구가했다. 그들은 배금사상에 빠졌으며 자기 일과 자기 이익에만 골몰했다. 그들은 스스로 구획한 입신영역과 위신에 치우쳐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져버렸다. 그들의 안중에는 하나님과 그의 킹덤 목적은 존재 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 땅에만 눈길을 두었던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음은 한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그의 마음의 일단을 알려주는 환상이다- 나의 저널링 노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9년6월9일 양촌에서의 체험: 중보자의 기름부음과 환상”


날은 양촌의 영성반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학장께서 하는 강의시간이었다. 강의를 끝내고 기름부음에 들어갔다. 그는 중보의 기름부음을 위해 양촌의 사역자나 학생들 가운데 중보의 영을 받은 사람을 불러내었다. 강의 도중에 이미 자기를 위한 중보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고 우리 가운데 중보자가 많지 않음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그가 강의를 하는 동안 중보의 영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몇몇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불러내었고 그들에게 중보의 영을 분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중보의 은사를 받은 자나 중보기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목사를 비롯한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고 나 역시 뒤따라 나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그가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자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에게 강력한 중보의 은사와 중보자의 마음이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주님과의 대화에 들어갔고 그분과의 만남 안에서 한없는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정작 나를 무척이나 애절하게 흐느끼도록 만든 것은 그 순간 주님과 나눈 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작 내게 펼쳐진 환상과 그 의미 때문이었다.

째 환상: 우리 민족의 낙태의 죄에 대한 그림 환상 중에 보니 나는 어느 큰 경기장에 와 있었다. 내 앞에 벌어진 전경은 가히 한숨과 슬픔과 고통을 자아낼 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축구경기장 같은 큰 경기장을 가득 매운 해골들이었다. 사람의 해골들이 그곳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앞에는 해골들로 계단마다 층층이 가득 채워진 모습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라운드뿐만 아니라 관중석을 채우고 남도록 조그만 해골들로 차고 넘쳤다. 그런데 그 해골들은 골반이나 머리가 아주 작았다. 아이들의 유골들이었다. 그들은 제각기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여기보세요. 우리는 억울해요. 우리는 낙태를 당했어요.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죽인 거예요. 우리의 원한은 누가 풀어주나요?” 그것은 원성 바로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낙태를 당한 그들이 자신들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 하나님, 이 일을 어떡하나요? 저 아이들을 보세요. 저들이 저토록 애절하게 원성을 토하고 있네요. 억울하다며 신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하나님!’ 그 환상 중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렇게 슬피 울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네가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묻고 계셨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너희 조상이 지은 죄와 너희 민족이 지금까지도 짓고 있는 죄악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들렸다. 하나님은 “너희 민족에게는 우상숭배를 통해서 흘러내려온 죽음의 영이 넘치고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오랜 과거로부터 자행된 낙태의 죄악과 현재에도 수없이 진행해지고 있는 낙태가 원인이 된다는 말씀이셨다.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우상숭배의 범람과 오랜 관행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거부한 결과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경시는 폭력과 학대, 학살과 자살의 연쇄효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마음이 다가오면서 애통하는 마음이 저며왔다. 우리민족의 죄악이 말할 수 없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반만년의 우상과 주술의 죄악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째 환상: 교회지도자들의 죄와 교회의 죄악에 대한 환상 이렇게 회개하며 절규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교회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들에 관한 그림과 함께 말씀을 주셨다. 교회 안에서 횡행하는 인습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관행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강한 바람 앞에서 흔들리는 나무 가지들이 혼란에 빠진 백성들의 흔들림 같아 보였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우상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수용하고 반쪽 진리를 표방하며 하나님 자신과 그의 말씀을 등지는 그림이었다.

나님은 백성들이 나태와 방종에 빠지고 혼란 가운데서 요동하는 이유는 이 나라 교회지도자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타협한다고 하셨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말씀보다 전통과 인습을 지키기에 열심인 것을 애통해하셨다. 시대의 흐름이나 교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고 슬퍼하셨다. 킹덤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무감각을 놀라워하셨다. 하나님의 킹덤이 아닌 개교회의 성장과 위세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셨다. 불의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와 교회 안에 만연한 ‘진리경시’ 풍조를 개탄하셨다. 다가올 배교의 때에는 추풍낙엽처럼 흩날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 주여, 이 백성의 죄악을, 가증한 우상숭배와 피 흘린 죄악을 사하여 주소서. 이 나라 교회와 리더들의 불신과 불순종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소서. 교회들의 배교의 물결을 어떡하나요?” 이것은 환상을 본 후에 내가 한 절규에 가까운 기도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 때에 남긴 기록이었다.

기에 소개되는 또 다른 환상은 내가 ‘치유영성연구원’에서 수학할 때의 체험기이다. 나는 많은 영적 체험들을 기록하곤 했는데 나의 저널링은 이것을 2009.2.21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는 내가 많은 기름부음의 체험을 하면서 은혜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저널은 그것을 “아버지 치유기간(19-21/02/09) 마지막 시간에 주께서 주신 환상이다”라고 적고 있다:

2009년2월21일에 본 환상


곳은 어노인팅의 산실이다. 요즘엔 더욱 기름부음이 풍성한 계절인 것같이 다가온다. 미니스트리 시간이 되면 기도를 받다가 나는 자주 바닥에 쓰러져 임재에 들어가곤 한다. 오늘 또다시 기도를 받는 중에 깊은 임재에 들어가서 주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다.
환상가운데서 나는 주께서 타고 계신 ‘하늘의 항공모함’에 올라오라는 주님의 손짓하심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주께서 타고 계신 항공모함에 올랐다. 올라 타고서 보니 나는 주님과 단둘이 비행하고 있었다. 신나게 타고 가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내가 보니 우리가 타고 있는 항공모함 밑으로 많은 항공모함을 연상시키는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고 전진비행을 하고 있었다. 얼마를 갔는가 싶었는데 가다 보니 정작 함께하셨던 주님은 보이지 않고 나 혼자만 비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탄 항공모함 아래서 편대를 이루어 적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여러 ‘층’들의 비행단을 향하여 내가 지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맨 아래 편대의 전투기를 향하여 그들에게 해당되는 작전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전진비행을 하면서 시간과 위치를 따라 공격하거나 다른 작전들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각 전투기를 향하여 내가 맨 위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아군 전투기들이 여러 층으로 편대를 이루고 적진을 폭격하고 공수부대를 투하시키고 적군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상 안에서 나는 주님과 단둘이 항공모함을 타고 ‘팀-군’을 지휘하게 된 특권과 사명을 인하여 감격해 하고 있었다. 나의 사명은 일종의 ‘특공대’를 지휘하는 것이었고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임무였다. 하늘의 항공모함을 비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공수양방의 사명이었다. 때로는 주님과 함께 ‘비행’하고 때로는 공격하는 일이었다. 내가 본 하늘의 항공모함은 주께서 작년 10월의 깊은 치유기간에 나의 환상 안에서 양촌에 주셨던 공수양면의 무기와 같은 무기였다. 이제 보니 나 역시 그것을 타고 ‘항공모함-특공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환상을 본 후 나는 이 환상이 바로 ‘기도와 치유의 집’이라는 사역과 일맥상통하는 그림이라 여기게 되었다. 알파-기도&치유의 집을 필두로 알파-오메가 기도&치유의 집들을 세워 네트워킹하고 지도하는 사역이라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게 여겨졌다. 아마도 그렇게 기도했으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주께서 미리 예고해 주시는 응답이라 믿게 되었다.”

기까지가 그때 내가 적어둔 기록이다. 나는 2007년 초에 “24/7-기도&치유의집”이라는 비전을 받았다. 그 당시에 나는 영국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같은 해 여름에 우리가족은 일시 귀국하는 기회를 맞이했다. 기독백화점에 들려 나는 그 비전을 목판에 새겨서 영국으로 가져갔다. 그 비전을 보전하고 이루기 위해서였다. 2008년4월에 우리부부는 17년간의 국외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비전을 담은 목판은 오랜 세월 동안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비전은 나의 마음 안에서 언제나 불타고 있었다. 이제 그 비전은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현재 사역으로 연결되고 있는 중이다. 그 모판적인 증거가 행신동에 소재한 ‘e-기도&치유의집’이고 지금 우리 거실에 걸려진 그 목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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