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영성을 향하여(Ⅲ)-'광야의 시험'

[TESTIMONY#22]

야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아들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에 목적을 가지고 임하고 있었다. 목사가 사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사람들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일 수 있었다. 공부하고 기도한답시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있는 사역자의 모습은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의식’이 강했던 내게는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라” 칭함을 받은 나는 확실하게 나의 정체성에 변화를 받고 있었다. 얼마나 사역에 애착을 가졌던 나였던가! 나는 평소에 사역을 통해서 나의 ‘나됨’을-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입증하려 애썼다. 나는 스스로 주와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처음부터 은혜를 많이 받았고 나를 부르신 주의 소명이 강렬했기 때문에 그 부르심에 응당한 사역의 업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곤 했었다. 나는 ‘선교사로서의 소명’ 자체가- 조금은 변명적인 발언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들로 하여금 사역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선교사적 소명을 받고 일한 사실은 나를 사역의 열매나 업적에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주님은 선교사역이나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가치를 취하려고 하는 나의 고아적인 사고로부터 나를 독립시키실 필요가 있었다. 사실 그것이 주께서 나를 광야로 불러내신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내가 사역을 하지 않아도 나의 자존과 가치 매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그 ‘퍼포먼스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사역을 하지 않아도 자유로웠고 사람들의 평가에도 여유로웠다. 나는 이런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과연 광야는 시험의 장소였다. 광야에 내려지는 매일의 만나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때때로 예상찮게 차려지는 ‘광야의 식탁’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광야는 광야일 수밖에 없었다. 광야는 하나님과의 만남도 있는 곳이지만 마귀의 시험이 상주하는 곳이다. 광야는 신자가 결코 안주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프로젝트’로 지목된 제자라면 더욱 그렇다. 성령께서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 광야는 내게 시험이 필연적으로 뒤따른 곳이 되었다. 캔사스시티에서 돌아온 후 나는 6개월 여간을 나의 가정과 사회적 친분관계를 정리하는 일에 활용했다. 그리고 ‘아골’같은 신도시에서 ‘약속’이 있는 광야의 처소로 거주지를 옮기는데 사용했다. 그런 연후 나는 진지하게 그 광야에서 수업을 받을 채비를 했다. 나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신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가진 주님과의 친밀함은 한층 고조되어갔다. 나는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에 열중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때 내가 만났던 책이 클락 부부의 “하나님의 임재연습 24/7”였다. 나는 그 책을 받은 즉시 읽고 또 다시 읽었다. 그 책을 세 번에 걸쳐 독파하고 그들의 나머지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와 사역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메시지는 나에게 신선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나는 광야의 목마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메시지를 들이키듯 마셨다. 얼마나 단순하고 신선한 메시지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들의 메시지는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질 않았다. 소화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고 파악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그 신선도와 심도 때문이었다. 어떤 특정 부류 또는 박스나 카테고리에 끼워 맞추려 해도 어울리질 않았다. 나는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를 접하고 그들의 삶과 영적 ‘혈통’을 알아가면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데니스 클락이 성령으로부터 영적 삶을 배워갔다는 증언을 수긍하면서 접근했다. 그는 영적 진리들과 킹덤 삶의 원리들을 책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성령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데니스는 자신이 먼저 “the school of the Spirit”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학교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나중에는 여러 학파들의 가르침을 접하기도 했지만 그가 제일 먼저 배움을 시작한 곳은 ‘성령학교’였다고 했다.

들의 치유접근을 접하기 전에 나는 이미 양촌 시절부터 내적 치유에 관해서 배웠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치유가 절실한 상황에서 나는 그 이후 줄곧 내면치유에 관한 서적들을 뒤적였다. 나는 특별히 샌포드부부의 저작들에 심취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그들이 남긴 열 몇 권에 달하는 저작들을 섭렵했었다. 그리고 다양한 치유접근들을 여기 저기서 배웠다. 우리부부 역시 감정치유를 여러 사람들에게 시도하면서 치유사역을 해왔다. 그러나 클락부부가 시도하는 감정치유는 그 접근이 전혀 달랐다. 그것은 현대과학과 의학과 성경 모두가 지지하는 통전적인은 접근이었다. 그들의 접근은 나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짐 골 같은 성령사역에 권위 있는 분의 강평에서도 표현되듯이- 기존의 “개척적인 차원”의 치유방법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가히 ‘혁명적’인 치유접근이었다. 그간에 소개된 치유접근들은 치유와 회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방법상에도 다양한 접근이 적용되었다. 치유방법도 간단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어서 상담을 전공한 전문가만이 치유상담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치유를 받아도 재발이 빈번하여 반복적인 치유가 필요한 방법들이었다. 그러나 풀스태춰 감정치유는 방법 면에서 기존의 접근들을- 시간과 방법 그리고 효과 면에서- 전적으로 혁신시킨 접근법으로 소개되었다. “빠르고 간단하고 대단히 효과적인” 치유접근의 트레이드 마크를 가진 풀스태춰 치유접근을 제시 받고 나는 그 사역을 직접 가서 배우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펴낸 4권의 모듈교재를 접하고 그것을 학습하면서 그 내용과 방법 면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그들의 모듈교재들을 입수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은 아들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다운받은 것이었다. 그 교재들은 그곳에 직접 가서 훈련을 받아야만 취득할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그것은 클락부부가 인근의 사역단체에서 강의를 하면서 소개한 교재들이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실수로 그것을 그들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다. 한 동안 그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던 그 자료들을 때마침 그 페이지를 방문했던 우리 아들이 발견해냈다! 나는 그것을 출력해서 교재로 엮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교재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모듈교재를 접한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그 교재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그들의 사역접근을 국내에 전수하고 싶었다.

는 치유가 필요한 아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하기로 계획하고 아들과 논의했다. 그때가 2014년11월이었다. 마침 그들의 홈페이지에 ‘선교사집중훈련’ 프로그램이 개설된 것도 발견했다. 그들에게 문의한 다음 우리 부자는 다음해 5월에 있는 그 프로그램에 등록을 했다. 여기까지는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시험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해가 지나면서 나는 하나 둘씩 어려움이라고 표현되는 도전에 직면했다. 가장 큰 도전은 우리가 과연 “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되었다. 이유는 그 훈련과 연관하여 우리가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는 정작 재정이 근본적인 이슈로 부상했다.
이 근본적인 이슈를 해결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것을 1차 시험이라 부른다- 스토리는 이렇게 전개된다. 소득원이 없는 우리에게는 여행경비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 당시까지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원을 소진하고 있었다. 전세금을 남겨서 생활비로 충당하며 살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전세금에서 떼어낸 금액마저 소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3년전에 내가 은행원의 권고로 월10만원짜리 적금을 들었었는데 그것이 그 해 3월에 만기가 되어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여비의 일부로 충당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여비로 사용하고 나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형편이었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돈마저 여비로 사용하고 나면 앞으로 무엇으로 생활할 것인가? 그 돈이라도 생활비에 보태어 단 몇 개월이라도 연명해야 할 것 아닌가? 조금은 착잡한 현실적인 문제가 이슈거리로 대두되고 있었다.

즈음 나는 데니스 클락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계시되었던 여호와의 언약적인 이름들에 관한 데니스 클락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들이 계시한 바를 자신의 실제적인 삶에서 테스트를 했다고 설파했다. 그 이름들을 지식으로만 받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적용하면서 알아갔다고 증거했다. “여호와-로히”를 예로 들며 그는 그 이름을 자기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체험하면서 익혀갔다고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한다면 실제로 그가 ‘나의 목자’가 되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호와 목자께서 일상에서 그의 목자로서 자신을 지켜주시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했다. 데니스는 자신의 삶을 목자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기면서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주시길 현장에서 ‘시험’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의미하는 대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알아갔다고 설교했다.

획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 나 역시 그렇게 해볼 심산이었다! 나는 그 즈음 “엘-샤다이” 전능자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그가 나의 삶에서 나의 넉넉한 공급자가=my all sufficiency 되어주시길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테스트하고 싶었다. 나는 엘리야가 찾아간 사르밧 과부를 생각해냈다. 그 과부는 지금 자기가 가진 식량을 먹고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어주는 믿음을 행사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 과부는 여호와의 선지자의 말을 듣는 편을 선택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의 요구를 듣고 믿음을 행사했다. 결과는 기적이었다. 남은 식량을 먹어 치우고 흉년으로 죽어간 것이 아니라 그 식량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로부터 생활전체를 보장받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의 선택을 나의 형편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일 것 같았다. 나도 그것을 택했다. 남은 돈을 ‘먹어 치우는’데 소모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길을 선택하고 생활은 주님으로부터 보장받는 길로 가고 싶었다. 나는 미국으로 가는 길에 나머지 재원을 모두 투입하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경비에 소요되는 나머지 재정과 그 이후의 생활을 나의 주께 간구로 올려드렸다. 그 경비에는 두 사람의 항공료, 두 사람의 등록비, 두 사람의 5주 숙식비, 체류기간의 교통비가 주된 항목이었다. 나에게 정작 골치거리로 부상한 것은 교통비였다. 나는 자동차가 없이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기간 체류를 하려면 자동차가 필수였다. 출발을 1개월 앞둔 시점에서 나는 미국사위에게 미국에서 자동차를 렌트할 경우에 비용이 얼마 정도 소요될 것 같으냐고 물어 보았다(사위는 아이들과 함께 그의 아내의 출산을 위해 우리 집에 와서 머물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러나 나중에 골치 아픈 상황을 야기했다! 렌트비는 보험비를 합산해도 400달러쯤이면 될 것이라 했다. 지금 당장 예약하지 말고 출발 1주일전쯤에 해도 무방할 것이라 했다. 사위의 대답을 믿고 나는 예약하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출발 전까지 모금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께서 여러 사람들을 움직이셔서 경비에 필요한 재정은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렌트하는 문제가 마지막 걸림이 되었다. 출발을 1주일 앞두고 우리는 인터넷을 열고 렌터카를 예약하려 했다. 도착공항에서부터 렌트하여 돌아오는 공항까지 그리고 보험료를 합산한 비용을 산정해주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러 회사들이 산정하는 다양한 패키지를 여러 갈래로 둘러봐도 800-1000불이 소요되는 비용이었다! 비용 그 자체만 해도 예상을 크게 초과하고 있었지만 한달 교통비에다 그렇게 많은 돈을 지출해야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용납이 되질 않았다. 사위와 함께 이리 저리 궁리를 하다가 결국 나는 자동차를 렌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나의 “엘-샤다이” 하나님께 넘겨드리기로 했다. 주께서 그곳 사람들을 감동하셔서 한 달간 우리에게 그들이 가진 자동차 한대를 내어주도록 역사해 주시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교통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간절한 청원을 올려드렸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하나가 있었다. 공항에 내려서는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여차하면 샬럿 공항에서 목적지 포트밀까지 택시로 갈 각오를 하고 있었다. 풀스태춰 본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출발 하루 전날에 가서야 기척이 있었다. 문의가 메일로 왔다. 공항에서는 어떻게 오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아쉬운 부탁이나 요청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에 황급히 그쪽에서 또다시 연락을 주었다. 공항에 누군가 픽업을 나올 것이니 택시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음 날이다. 우리는 평안한 가운데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 나이 지긋한 자매가 피켓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준비해 온 조그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에는 “To pastors Jonathan & Joanna Moon: At your service! From Rebecca” 라고 적혀 있었다. 돌아가서 나는 그 봉투부터 개봉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For rides/for help/information… I am at your service!” 그것과 함께 몇 가지 다른 내용도 담겨 있었다. 먼저 그것은 교통문제와 연관된 우리의 필요가 해결된다는 소식이었다. 레베카자매는 풀스태춰 본부에서 데니스 클락의 비서역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머물게 될 모닝스타호텔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훈련을 받는 그 기간 중에 풀스태춰 인스트럭트 훈련을 우리와 함께 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자연히 그녀는 우리를 자기 차로 날마다 교회까지 왕복드라이브를 하고 다녔다! 우리는 같은 숙박 장소에서 교제하며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면서 좋은 인연을 쌓았다. 레베카는 자신을 유대인으로 살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메시아닉 그리스도인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20여년 전에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3년전에 킹덤라이프 교회에 왔고 풀스태춰 훈련을 통해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말했다. 레베카는 그 훈련을 받은 후 몇 달이 못되어 풀스태춰 목사로 안수를 받았고 킹덤라이프 목회자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관문시험’에 관한 스토리이다.


번째 시험거리는 이렇게 전개된다- 다음 해 2월이었다. 미국출발 두 달여를 앞두고 함께 가기로 한 아들이 미국가는 것을 드롭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일은 나의 의지를 시험하고 나섰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흔들고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가 미국방문을 계획한 이면에는 아들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아들의 감정적인 이슈와 그의 고통을 풀스태춰 사역을 통해서 해결 받는데 있었다. 그 계획에는 다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고질적인’ 감정상처의 치유도 가져오고 동시에 그 역시 풀스태춰 훈련과 함께 목회자로 세워질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이 ‘아버지의 계획’을 완전히 휘젓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가 갑자기 풀스태춰를 험담하고 그 사역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말을 하면서였다. 지금에 와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나를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었는데 그 미니스트리 자체를 험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나는 그의 언행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악의적인 도전이었다. 나의 실망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궁리를 거듭했다. 그를 설득해 보려고 수 차례나 시도해 보았다. 그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 가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왜곡된 사고와 한번 내린 결정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좌절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친 걸음이었다. 나는 그곳에 가는 것이 주께서 내리신 방향설정이라는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나는 그를 제외시키기로 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를 궁리하다가 아내를 생각해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접근했다. 생각해보니 아내와 함께 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여겨졌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가가 함께 가자고 설득해 보았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열려 있지 않았다. 그녀 역시 쉽게 내 기대대로 동의하고 나서질 않았다. 그러나 기도해 보겠다고는 했다. 나는 2-3주 가량을 실의에 빠져 씨름하고 있었다. 아내가 동의하고 함께 가주길 기도했다. 아내는 딸의 출산을 전후하여 조산역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3주 만에 간신이 나는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 그녀가 그 결정을 하는데 무려 3주나 걸렸다! 그러나 나는 내심으로 크게 안도했다. 나와 함께 동행해줄 파트너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아내가 함께 간다면 여행은 성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갈수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여행 기간을 한 달여 앞둔 시기였다. 그러나 시험은 계속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험거리 세 번째는 건강문제였다. 우리가 출발을 2주 앞둔 시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왼편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갑자기 나는 무릎사용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편하다 했더니 다음 날에는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왼쪽 다리를 움직이는 일에 어려움이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전에 없던 현상이 생기면서 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자문하면서 나는 사뭇 고민에 빠졌다. 병원엘 가야 되는 일인지 아니면 기도로 치유해야 할 일인지가 궁금해졌다. 병원엘 가야 하면 정형외과를 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수술을 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 것인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문이 몰려왔다. 지금 이때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출국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제는 불안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말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병원엘 가서 가료를 받아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까지는 감추었다고 해도 나는 그 문제를 더 이상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끝까지 감추지 못하고 결국 아내에게 나누고 기도를 부탁했다. 아내의 반응은 예상과는 다르게 담담했다. 나는 병원엘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갑자기 생긴 병인지라 그것이 영적 공격이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치료를 받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미국엘 가서 한 달 이상을 체류해야 할 것인데 고민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 역시 나의 “엘-샤다이” 하나님께 맡겨 올리기로 뜻을 정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주님의 뜻을 묻고 치유를 간구하며 습관을 따라 내 무릎을 축복하고 치유를 명령했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다시 한번 “엘-샤다이”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다. 그 다음 날이었다. 어제까지 불편했던 무릎이 다음 날에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나는 이번의 여행길이 굴곡이 많다는 사실에 동의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의 뜻에 우리의 미국여행을 맡겨드렸다.

것 보다 더 난처한 건강에 관한 시험은 정작 아내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우리가 출발을 겨우 3-4일 앞둔 시점에 찾아온 것이다. 아내가 자신의 왼쪽 목 부위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였다. 이번의 시험은 정말이지 내게 시험거리가 되었다! 나에게 다가온 건강문제는 내가 주도해서 결정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다가온 몸의 이상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자신의 목에 불어난 ‘덩어리’를 만지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갑상선에 이상이 생긴 증상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여성의 갑상선 이상은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 질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당황스럽고 불안한 상황 앞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분명히 병원엘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간에 미국사위와 두 아이들을 섬기고 딸의 출산을 뒷바라지하던 아내가 병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이성적으로 치자면 여행을 취소하고 아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내가 고집하여 여행을 강행해서 아내가 여행길에서 몸져눕는다면, 그리고 병이 심해진다면, 그리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된다면?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위기를 만난 셈이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나의 고민의 깊이가 있었다. 이때는 아내가 결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내의 결정을 존중할 각오를 하고 아내에게 병원엘 가자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아내는 병원엘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병원가는 일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아내이긴 했다. 그러나 이번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5주 동안을 외국엘 가야하고 거기서 체류하며 훈련을 감당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정색을 하고 기도해서 치유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인 나를 향해 “당신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부부는 아내의 건강이상을 다시 한번 “엘-샤다이” 하나님께 맡겨 올리는 결단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내의 목에 기름을 바르고 내 손을 아픈 부위에 데고 그간에 잘 섬겨준 그 몸과 목을 축복하고 치유를 명령했다. 다음 날 우리부부는 아내의 목이 전과같이 말끔한 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라파시며 “엘-샤다이” 되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우리부부를 향한 주의 뜻은 풀스태춰 훈련을 지시하고 있었다.

믿은 바대로 치유를 받은 우리부부는 4일 후 미국여행 길에 올라 2년만에 다시 미국을 찾았다. 예전엔 주로 미주리 캔사스시티가 행선지였다면 이번엔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밀이었다. 샬럿공항에 내린 우리는 공항에서부터 주께서 배려해 놓으신 ‘천사’를 만나서 모든 일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았다. 그녀는 자기가 써서 전달했던 서한대로 교통편에서부터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닝스타호텔에 하나님의 배려와 그녀의 추천으로 5주간의 숙박비를 저렴하게 해결했다. 며칠간의 휴식과 적응이 끝나고 5월부터 4주코스의 집중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킹덤라이프 교회의 예배에 출석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사로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영적 코드가 그들의 영적 흐름에 너무도 잘 맞아서 우리는 금방 ‘일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부부는 4주간의 훈련에 참여하면서 그 교회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내는 그 동안 딸아이 출산과 그의 가족을 섬기는 일로 지쳐있던 몸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서 모처럼 안식할 수 있었다. 한껏 심신이 지쳐있던 아내는 육체적인 쉼과 영적 공급, 그리고 킹덤라이프 성도들과 나눈 교제를 통해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우리부부가 함께 동반한 것은 우리의 면면을 알리고 그들과 동역을 약속하는 일에 신뢰의 자산이 되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셨다. 그분은 정녕 우리의 “엘-샤다이” 하나님이 되어주셨다. “엘-샤다이” 하나님은 내가 기대하고 청원했던 모든 필요들을 공급해 주셨다. 실제로 그는 우리가 그 여행에 필요로 했던 것과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더 넘치도록 채워주셨다. 우리가 풀스태춰 방문을 계획하면서 기대하고 바란 것은 그들의 메시지와 사역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듈교재들을 한국에 전수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추천을 얻어내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풀스태춰 지도자들은 그 일을 포함해서 많은 다른 자료들을 지원해 주었다. 데니스 클락목사는 먼 곳에서 온 아들이라 부르며 나를 자신의 영적 아들로 영접해 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풀스태춰 사역을 맡겼고 한국에서 그 사역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안수하며 대표자로 세워주었다.

야의 시험은 과연 자신이 “엘-샤다이” 되심을 우리의 모든 영육간의 필요를 채워주심으로 확증하신 계기가 되었다. 광야에서 만난 시험들은 나에게 도전으로 다가 왔었다. 그 시험들은 나의 믿음과 인내를 요구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 도전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었다. 믿음의 싸움은 우리 각자의 영적 근육으로 자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험들을 만나며 나는 감상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영적 순례 길에서 내가 그렇게 강력한 영적 공격에 처한 경험이 또 언제 있었나 하는 의문이 그것이었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번에 경험한 영적 공격은 그 정도로 심각했다. 나는 어둠의 세력이 풀스태춰 미니스트리가 한국에 상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가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만나 그 사역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킹덤의 메시지와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은 우리 앞에 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로 가로막으려 했었다. 우리에게 던질 수 있는 시험거리를 만들어 내고 시험하려 했다. 그들의 기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를 좌절케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시험은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킹덤의 제자인 우리는 더욱 연단될 수 있었다. 사단의 방해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목적을 섬기려 하는 우리의 결단에는 미칠 수 없었다. 마지막 세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종말적 계획은 그의 종들을 통하여 신실하게 수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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