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영성’을 향하여(II)-2 / [가정-그리스도의 제자 훈련의 도장 外]

[TESTIMONY#19]

가정-그리스도의 제자 훈련의 도장

부생활 가운데서 남자와 여자의 우선순위나 특성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만났던 '고생살이'를 고백합니다. 우리의 부부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학습의 필요도 여전합니다. 연습하라는 권면이 주어졌고 지난 관계의 수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간섭으로 여정의 고비마다 점검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우리의 부부관계에 매우 적절한 정비를 가져오는 기회였습니다. 제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올 해로 34년째가 되어갑니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했기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소명과 결혼의 확인과정도 있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만나 믿음생활과 사역을 함께 하였기에 많은 동료 형제자매들의 축복과 성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이후 우리의 부부관계에는 사소한 이유에서 기인한 갈등과 소음도 많았습니다. 결혼 초기엔 두 사람이 결합한 후 누가 가정을 리드할 것인가라는 이슈가 간간이 일어난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특히 남편인 내가 아이들을 훈육하려 할 때 아내가 아이들을 감싸거나 그들을 대신하여 대답을 하며 나를 상대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선교사역이나 교회사역을 하는 동안 일어난 많은 관계적인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도 많습니다. 내가 상황을 잘못 판단하거나 나의 리더십에 결함이 있어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태도를 옹호하며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어조나 태도는 내가 아내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사역의 방향조정이나 선교지 이동의 필요가 생겼을 때 의견조율이 순조롭지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창조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 질서를 준수하지 못하여 동역이 순조롭지 못했던 아쉬움도 많습니다. 사역에 대한 기대와 사역열매에 집착한 나머지 내가 아내를 차분히 설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 분란을 초래한 적도 있습니다. 이 모든 조화되지 못한 부부관계와 동역의 어려움은 남편과 아내가 제각기 갖는 우선순위의 차이를 간과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를 주장한 결과였습니다. 갈등과 시행착오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내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해서라는 이유와 가장인 내가 가정을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리드해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흔을 지닌 채 우리는 일선사역 현장에서 선교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부부는 국내의 한 치유센터에서 치유를 받으며 배우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학습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내면의 회복과정을 지나면서 치유의 효과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학습과 치유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은 부부간의 문제를 조명하기 위해 각자의 원가정과 성장과정에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가족사 안에서 만난 불행한 경험들, 특히 나는 아버지부재로 인한 결손, 물질적 궁핍, 우리 가계의 여성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관계의 미숙은 내가 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오해를 불러왔고 가족문화가 주입한 많은 그릇된 관습은 아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성경적 이해나 준비 없이 출발한 우리의 결혼과 가정생활은 갈등과 마음고생이 예고되어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난 문제들은 우리의 결혼생활이 창조질서를 벗어난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믿음생활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시작되었습니다. 결혼과 믿음생활이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다 보니 성화와 결혼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실수와 갈등이 거듭되었습니다. 세상적인 경험과 내가 가진 편견이 아내의 그것과 맞물리는 상황이었는데 성경적인 결혼의 이해나 앞선 분들의 코칭이나 모델을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믿음생활과 결혼생활이 외국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아쉬운 부분과 결핍들이 수두룩한 환경이었습니다. 아내를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자로,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파트너로 여기고 함께 성숙하며 동역해 나가는 일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아내를 내게 맞추려는 것과 아내의 성격과 습관을 바꾸어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오랜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아내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고 아내의 필요를 헤아리는 일에는 서툴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그녀의 우선적 필요를 따라 섬기는 일에는 실패가 거듭되었고 많은 경우에 아내의 탄식과 비판을 자초하곤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남성 우월사고가 스며있었고 아내의 나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는 일에는 많은 무지와 미숙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무시하는 말투와 나의 내면의 교만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과 가정생활이 제자훈련의 도장이라는 인식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화중심적 관계형성을 위해

녀와 관련된 강의 가운데서 크게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영적 경청'이라는 대화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성령의 책망하시는 은혜가운데 자책과 회개와 각오가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나 자신이 가족들과 공감하는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특히 아버지로서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그들의 입장에서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는 후회가 많았습니다. 자녀들의 눈높이와 정서적 필요를 헤아리며 대화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고통을 안겼다는 회개가 밀려왔습니다. 2013년 봄에 국제기도의 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새롭게 만난 체험과 치유회복을 경험하면서 가진 깊은 인식 가운데 하나는 내가 아들들과 관계를 제대로 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의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부자간의 관계형성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아들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내적 필요를 챙길 수 있는 아버지됨의 능력과 역할이 없었다는 회한이 있었습니다. 그 후 둘째 아들과 그의 회복을 위한 대화와 치유기도를 함께 지속해 왔습니다. ‘아버지상처’로 힘들어했던 아들이 태아기상처가 자신의 모든 고통의 시작이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 후 그간의 혼동과 슬픔과 고통이 우리들 모두에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판단 아래 거주지와 교회를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힘든 결단을 하고 삶의 공간을 옮겨온 이후 아들은 간간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우리부부는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고통이 무거웠습니다. 자신의 둥지를 떠난 작별의 아쉬움,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적응의 부담, 자신 안에 아직 거두어지지 않은, 부모의 하나되지 못함을 보는 마음의 상처,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과 그로 인한 마음의 분노, 마음으로 떠나 보내지 못한 형제들과의 작별의 아쉬움, 간간이 성령이 주시는 책망과 깨달음 등으로 고통하는 아들을 대하는 일이 나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태로 처져있는 아들로 인해 최근에 우리부부는 언쟁을 하였고 그 모습을 목격한 아들이 자신 안에 들끓고 있던 분노를 분출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분노를 표현하는 언행에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나는 한없이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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