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영성을 향하여(Ⅰ)-4

[TESTIMONY#17]

런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부부는 J교회생활 1년을 보냈다. 나는 나와 교분이 있는 서울 강동구의 한 교회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라도 와서 설교를 해달라는 초청도 사절했었다. 지금은 사역기간이 아니라 훈련의 때라는 생각과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임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는 육신적으로는 나에게 내려놓고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헤아리자면 그 계절은 나에게 퍽이나 축복된 기간이었다. 내가 진실로 나를 다루시는 주님의 손길 아래 거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역을 하지 않았기 대문에 정기적인 소득원이 없었다. 그러나 영적 식탁 곧 광야의 만나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배려로 우리부부가 먹을 ‘식량’은 마련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우리가 출석하는 J교회의 ’교회생활’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으로 친밀기도와 성경묵상과 연구에 시간을 썼다. 그리고 나는 이 기간에 둘째 아들을 통해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도하신 섭리의 일환이었다. 그 아들이 자신의 치유의 절실함을 따라 치유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이 ‘한가한’ 시기를 활용하여 그들의 메시지와 사역을 접하고 알아가면서 풀스태춰 미니스트리의 시대적인 ‘소명’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출판물들과 인터넷 매체를 통한 메시지 전수를 통해 그들의 사역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렇게 시간을 보낸 지 1년쯤 되었을 때 주께서는 우리가 이 광야대학를 졸업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시사를 하셨다. 그리고 내년에는 새로운 사역을 주시겠다고 일러주셨다. J교회를 출석한지 14개월 만에 우리는 그 교회를 떠났다. 교회리더분들에게 다가오는 2015년 4월에 4-5주가량의 선교사집중훈련이 계획되어 있어 미국을 가야할 것을 말씀 드리면서 이해를 구한 다음이었다. (이유는 셋째 아기출산을 위해 다음해 1월에 딸 부부가 우리 집에 오게 되어 있었다. 조산을 도울 일과 미국방문과 사역준비 관계로 우리는 그 교회에 더 이상 충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출석만 하면서 시간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조금은 ‘편한’ 교회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 필요를 따라 우리는 인근의 L교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장소를 지금의 곳으로 옮길 떼까지 거기서 ‘피신’하며 지냈다. 말하자면 그곳은 우리 나름의 “그릿 시냇가”였다.)

리부부는 다음 해인 2015년 4월에 미국 사우스개롤라이나의 포트밀에 소재한 미국-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방문하여 4주에 걸쳐 풀스태춰 치유접근의=Full Stature Approach 집중코스를 밟았다. 그 과정을 마친 후에 우리부부는 소정의 절차를 따라 풀스태춰의 인스트럭트가 되었고 한국에서 풀스태춰 미니스트리를 대표하는 사역의 책임자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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